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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한국전쟁기 아산지역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추진
 
아산뉴스   기사입력  2020/11/06 [18:10]
▲     © 아산뉴스

 

 아산시가 6일부터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이하 유해발굴)을 실시한다.
  
배방읍 외 4곳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유해발굴은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에 근거, 아산시유족회의 요청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다.

 

지난 4월 공모사업자로 선정된 사단법인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이하 한통연)가 민간인 학살 전수조사를 시행했고, 6일부터 노용석 부경대 교수팀이 유해를 발굴한다.

 

전수조사의 범위는 6.25한국전쟁 당시 아산에서 희생된 민간인들로 인민군점령시기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들과 수복 이후 부역혐의 희생자들이다.
 
지난 10월에 완료된 전수조사결과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상당수 포함된 희생 민간인은 총 3000명으로 추정되고 집단희생 장소는 각 읍면마다 적게는 2~3곳에서 많게는 10여 곳으로 총 30여 곳으로 조사됐다.

 

인민군점령시기 적대세력에 의한 학살과 수복 직후 부역혐의자 및 동 가족에 대한 학살은 마을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만큼 아픈 사건이었고, 사건 발생 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사건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상처와 상처로 인해 발생한 갈등은 지역사회에 그대로 남아있다.

 

노용석 부경대 유해발굴팀은 처형 당일 학살 과정을 목격한 목격자나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한 주민, 1980년대 이후 다른 사업으로 유해 매장지를 굴착하다가 유해를 목격한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신창면 1곳, 염치읍 1곳, 배방읍 1곳, 도고면 1곳, 선장면 1곳에서 유해를 발굴한다.

 

아산 민간인 희생사건은 한국전쟁 중 아산지역에서 발생한 학살사건으로 매우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학살사건을 ‘역사’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과거 하나의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지역사회의 오래된 문화가 있었고, 직접적인 원인은 북한 당국과 남한 국가권력의 학살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학살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은 학살을 증폭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건 발생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마을에 함께 거주해야 하는 상황과 국가권력의 반공이념을 근거로 한 통제는 주민들의 삶과 지역사회에 깊은 불신과 적대 문화를 형성했다.

 

이로 인해 아산 민간인학살은 과거에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사건발생 이전의 기나긴 역사와 아산 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건, 그리고 사건 발생 후 통제로 일관한 국가권력의 정책으로 인해 오늘 아산지역사회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됐다. 따라서 희생자에 대한 위령과 유족에 대한 아픔치유, 역사교육을 위한 지속적인 사업추진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시는 2018년 배방읍 폐금광과 2019년 염치읍 백암리 등에서 유해발굴 사업을 진행해 215구의 유해를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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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06 [18:10]  최종편집: ⓒ 아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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